이롭게 펼치는 집, 이서재(利敍齋)
LETTER No. 5
2026.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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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지를 보내고 계절이 한 번 바뀌었습니다.
그 사이 잘 지내셨나요. 라마홈도 조용히 봄을 기다렸고, 이제 다시 편지를 건넵니다.
라마홈의 다섯 번째 편지는 누군가의 집을 그리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흐름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집이 삶의 배경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는 순간들, 그 안에 조용히 쌓여 온 것들을 들여다보는 일.
이서재 작가의 이야기는 서촌 필운동의 한 한옥 마당에서 시작됩니다. 벚나무 가지 끝에 꽃망울이 맺히고, 이끼가 촉촉하게 숨을 쉬던 그곳에서, 그는 집과 자신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며 살아갑니다. 파리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돌아와 낡은 한옥에 짐을 풀던 순간부터, 집은 삶의 배경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었고, 그 시간은 고스란히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낯섦을 피하지 않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길어 올린 것들, 혼자 누리기보다 함께 나누려는 마음으로 쌓아온 시간들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봄 어딘가에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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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롭게 펼치는 집, 이서재(利敍齋)
3월의 서촌은 아직 단단하게 닫혀 있다. 골목 안쪽까지 파고드는 바람이 차갑고, 그늘진 돌담에는 겨울의 기색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나 필운동 한옥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진다. 벚나무 가지 끝에 꽃망울이 조용히 부풀어 오르고 있고, 발밑의 이끼는 촉촉하게 살아 있다. 이곳은 달력보다 먼저 계절을 알아차린다.
이서재(利敍齋). 이롭게 펼치는 집. 작가의 활동명이자 그녀가 사는 집의 이름이다.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그 둘을 애초에 나누지 않았다는 뜻이다. 파리에서 현대미술 작가로 살던 13년을 뒤로하고 서촌의 낡은 한옥에 처음 짐을 풀던 날부터, 그녀에게 집은 삶이 펼쳐지는 배경이 아니었다. 집 자체가 삶이었고, 그 삶이 고스란히 작업이 되었다. 누하동에서의 10년을 거쳐 지금 이 필운동 한옥에 이르기까지, 집이라는 화두는 그녀 안에서 한 번도 식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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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에서 던진 질문
설치와 미디어를 다루는 현대미술 작가로 활동하던 유학 시절, 그녀는 점점 낯선 감각을 느꼈다. 전시가 끝나면 남겨지는 쓰레기들, 작품을 팔지 않으면 작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최신 장비를 갖추어야만 경쟁할 수 있다는 조바심.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믿는 가치와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예술이 삶과 분리된 무대 위의 일이 아니라, 삶 자체가 하나의 지향점을 갖고 그 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일구는 과정이 조금더 섬세한 시각과 감각으로의 만들어 낸다면 그것이 곧 창작이자 예술적인 삶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이어와 결국 집이 창작의 장이자 표현의 장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방식을 내려놓고 한국의 뿌리에 기댄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 그녀는 귀국길에 올랐다. 그리고 전통가옥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란 어떤 생각과 태도로 살아온 민족인가를 이해하려면, 그 집에서 직접 살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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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배워간 10년
서촌 누하동의 작은 한옥집에서 그녀는 꼭 10년을 살았다. 에어컨도 없고 방충망도 없이, 기계보다 몸으로 먼저 해결하며.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원래는 손수 몸으로 해왔을 일을 현대로 오며 도구들이 대신하게 된 것일 텐데, 저는 원래 그런 도구란 없었던 시대를 사는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었어요. 거기서 몸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의 범위가 넓어지며 인간적인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했죠. 지혜는 그런 불편함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했어요."
옹기의 형태도 볏짚으로 엮은 형태도 모두 우리가 가진 풍토적인 조건 속에서 필요와 불편을 해소하려는 마음이 빚어낸 것이라고 했다. 삶의 필요에서 형태가 생겨나고, 그 형태 안에 지혜가 깃드는 것. 그녀는 그것을 '뿌리미감'이라 부른다. 한국의 전통 감각 속에서 오늘날의 삶으로 길어 올릴 수 있는 지혜와 아름다움. 누하동에서의 10년은 그것을 몸으로 배워가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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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家)은 우주(宇宙)이다.
그렇게 쌓인 시간 위에서 그녀는 집에 대한 자신만의 언어를 갖게 되었다.
"서양에서 집이라는 단어는 House와 Home으로 분리되어 있는 반면, 우리의 집이라는 단어에는 그 둘의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어요."
건물로서의 집과 삶으로서의 집. 그녀에게 그 둘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몸과 정신을 분리할 수 없듯, 집의 형식과 삶의 내용도 서로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 대신 '이서재'라는 집의 이름을 쓴다. 집이기도 하고, 자신을 지칭하기도 하는 이름이다.
"저에게 집은 역사성과 현재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이에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공간, 도구, 공간의 배치와 거기서 얻었을 마음까지도 역사 속에 있고요. 거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제 삶과 마음이 고스란히 숨을 곳 없이 드러나는 현장이 '집'이라고 생각해요. 하루하루가 쌓여 이룬 일기 같은 고백이 있는 곳, 어제보다 나은 모습으로 있기를 바라는 자신의 흔적들이 쌓여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천천히 덧붙였다. "집은 우주예요. 집 우(宇), 집 주(宙). 시간과 공간이 담긴 그 한자어 그대로, 집에서 시작하는 모든 일은 하나의 우주를 품고 있는 것과 같아요."
우주라는 말이 거창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그 말이 가장 정확한 말처럼 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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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위한 의자가 없는 집
10년의 누하동 생활이 끝나고, 그녀는 지금의 필운동 한옥으로 이사 왔다. 해결할 수 없게 된 빗물의 누수가 계기였다. 새 집도 오래된 한옥을 공들여 고쳤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모두와 함께 나눌 집을 마음에 두고 꾸렸다는 것이다.
"눈이 오는 마당을 함께 보기를, 수양 벚나무에 꽃 피는 날 차를 함께 나누기를, 마당 여기저기에 앉아 대청에서 들리는 소리자락에 함께 젖어들기를, 고요히 명상하며 푸른 이끼 정원을 눈에 담는 시간들을 상상했습니다."
그래서 집에는 그녀 자신이 편히 앉아 쉴 의자 하나 없다. 자신을 위한 자리를 두지 않는 집.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여전히 수도원이나 절간처럼 자신을 단정히 해야 하는 곳이고, 모두와 나눌 일들을 더 많이 모색하고 있는 장소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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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미감을 따라 이어지는 작업들
이서재의 작업은 하나의 형식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설치 작업에서 시작해 지리지를 그리고, 도자를 빚고, 집의 문을 열어 사람들을 맞이하는 집전까지 이어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다른 활동처럼 보이지만 그녀에게는 모두 같은 흐름 안에 있다.
"모든 작업들은 한국적 전통에 근간을 두고 내려오는 미감, 제가 말하는 '뿌리미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지리지는 우리의 지형과 기후와 풍토를 이해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 땅에 전해오는 생각과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림으로 그려내는 작업이다. 그렇게 체화된 감각으로 우리 풍토에 어울리는 도자를 만들고, 그 여정을 나누며 알게 된 뿌리미감을 집전이라는 이름으로 집에서 나누고 있다.
"옛집에서는 공부하고 배우는 과정의 작업들이었다면 새 집에서는 그런 감각들이 집에 뿌리내려 오늘날의 방식과 감각으로 펼쳐내는 일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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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게 잘 지켜가고 싶습니다
"우리 문화를 이해하고 그 뿌리를 찾아간다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을 제대로 알아간다는 것이더군요. 나를 잘 알게 된다는 것은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바람이 있다. 이 집이 하나의 종가가 되는 것이다. 예전의 종가가 제사를 근간으로 의식주의 가풍을 이어왔다면, 이서재는 오늘날의 삶 위에서 집 문화의 뿌리를 세우는 종가가 되기를 꿈꾼다. 나고 자라고, 맞이하고 보내며 일어나는 모든 인생사가 집과 함께 축제가 되는 삶. 그리고 그 삶을 이웃과, 멀리서 응원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AI가 보편화되는 세상 속에서 인간적인 정서와 가치를 만나는 일은 더욱더 목말라 갈 것입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정을 주고받는 일, 정성스럽게 차려진 밥상을 받는 일, 꽃이 피는 일을 함께 목도하는 일과 같은 온화함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마음을 귀하게 잘 지켜가고 싶습니다."
귀하게 잘 지켜가고 싶다는 것. 지키고 싶은 것이 분명한 사람의 말은 이렇게 조용하고 단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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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결을 가진 사람들
라마홈을 처음 찾아간 날을 기억한다. 통인시장 앞 첫 번째 라마홈이 문을 닫는 날이었다. 물건을 쉽게 사지 않아 오래 발길을 못 하다가, 문이 닫힌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인사를 나누러 갔다고 했다. 그 이후로 라마홈의 옷과 물건들을 찬찬히 보게 되었다.
"옷감의 선택, 옷의 만듦, 다루는 방식들까지 이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옷을 만들고 어떤 옷을 손님들에게 입히고 싶은 것인가 알 것 같았어요. 그것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전달되었을 때는 이미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태도를 입게 되는 것 같아서 언제나 놀라고 감동하고 있어요."
라마홈 역시 그들만의 종가를 차근차근 짓고 있다고 했다. 좋은 옷감으로 지어진,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집이라고.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무언가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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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물었다. 훗날 사람들에게 '이서재'라는 이름이 어떤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는지를.
"이서재 하면 '집'이 떠오르면 좋겠어요. 시간과 공간이 품은 가치가 더불어 사는 삶으로 뿌리내린 모습, 모두에게 이로운 집, 그 집과 하나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네요."
이서재. 이롭게 펼치는 집. 이름 그대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마당을 지키는 벚나무 순천은 곧 꽃을 피울 것이다. 누군가는 그 집에서 차 한 잔을 건네받고, 누군가는 이끼 정원을 바라보며 오래 앉아 있을 것이다.
집이 우주라면, 이서재는 오늘도 그 우주를 조용히 넓혀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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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하나의 우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을 만난 뒤에는, 다시 돌아온 자신의 공간을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어려워집니다. 그 안에 쌓여온 시간과, 무심히 지나쳤던 사소한 선택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서재는 오랜 시간 스스로의 삶을 통해 천천히 만들어졌기에 깊었습니다.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그 안에서 길어 올린 감각들, 혼자 머무르기보다 함께 나누려는 마음으로 확장된 공간. 그 모든 것들이 쌓여 하나의 '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집을 지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들이고, 무엇을 남기고, 어떤 시간을 머물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들 속에서요. 이 편지를 덮은 뒤, 잠시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공간은 어떤 시간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온기를 남기고 싶은지. 그 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이미 놓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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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ahome letter no.5
editor 김민하
photographer 천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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