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의 오래된 공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자연스레 느려지곤 합니다. 오래 지켜온 사람들,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장소들, 그리고 그 안에서 흐르는 숨결 같은 것들. 이번 세 번째 편지는 그런 서촌의 풍경을, 아주 천천히 다시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의 태도는 결국 그가 머무는 공간의 결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공간은 그 안을 지키는 사람의 리듬 덕분에 오래 기억 속에 남기도 하죠. 서촌을 걷다 보면 문득 마음이 고요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풍경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간이 보이지 않게 스며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라마홈에게 보안여관은 그런 마음을 배우게 해 준 공간입니다. 한 사람이 오랜 시간 지켜온 태도와, 공간이 스스로 품고 있는 결이 서로 어우러지며 만들어진 자리. 이번 편지는 그 자리에서 만난 한 문장과 한 사람의 시간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이 이야기가 당신에게도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라며 라마홈의 세 번째 편지를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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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장소를 오래 바라보는 사람에 대하여 보안여관 | 최성우 님
경복궁 돌담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골목을 한 번, 두 번 꺾으면, 서촌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낮에도 조금 어둑한 통로, 삐걱이는 계단, 한 번쯤은 무슨 곳일까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오래된 여관 하나. 서촌을 오래 산 이들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 어디를 떠올리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보안여관은 라마홈이 서촌에서 버티고 살며 옷을 만들고, 두 아이를 키우고, 가끔은 지치기도 하던 시간들 사이사이, 조용히 기대어 숨을 고르던 장소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최성우 대표님은 라마홈이 만드는 옷을 응원해 주는 몇 안 되는 ‘동네 어른’이 되어 주었고, 라마홈은 그 응원 덕분에 이 골목에서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세 번째 이야기는, 라마홈이 사랑하는 이 공간을 오래 지켜 온 최성우 대표님의 시간을 천천히 따라간다. 그날, 인터뷰를 맡은 우리는 조금 들뜬 마음으로 보안여관을 찾았다. 차를 내어 주는 손길은 조용했고, 말의 속도는 오래 생각해 온 사람의 리듬을 닮아 있었다. 보안여관을 한 문장으로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최성우 대표님은 잠시 웃으며 말했다. “시간과 장소의 사회적 가치.” 이 편지는, 그 문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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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집에 얹혀 살았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먼저 집 안에 늘 천이 쌓여 있던 풍경을 떠올린다. 섬유 회사를 하던 외조부 덕분에 집에는 데님과 골덴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어린 시절의 그는 늘 같은 감촉의 옷을 입고 자랐다. 작은 한옥에서 시작된 그의 집은 어느 날 갑자기 방이 열세 개나 되는 큰 집, 지금의 오초량으로 옮겨 가게 된다. 옆집 친구의 집이자 타이어 회사 사장이 살던 집, 너무 커서 한 번 들어갔다가 겁이 났던 그 집이 어느 날 자기 집이 되던 순간을 그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후 그의 삶은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한 중심에서 또 다른 변두리로 계속 옮겨 다니며 이어졌다.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더 먼 나라 프랑스로, 다시 바다를 건너 고향으로,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은 단순한 성공의 직선이라기보다 여러 번 부서지고 옆길로 새고 다시 돌아오는, 조금은 우회적인 궤적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특별한 무엇으로 정의하기보다, 다만 여러 겹의 시간 위에 잠시 얹혀 살아온 사람일 뿐이라고, 조금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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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여관이 그를 받아들이던 방식
그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찾고 있던 것은 ‘문화예술을 하면서도 실제로 숨 쉴 수 있는 땅’이었다. 인사동, 삼청동, 부암동, 평창동을 걸어 보았지만 어느 곳도 마음과 속도가 맞지 않았다. 그러다 인왕산 자락을 따라 서촌 골목을 걷게 되었고, 국숫집에서 한 끼를 먹고 나오는 길에 문을 닫은 지 오래되어 간판까지 사라진 여관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처음 그는 이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비가 새는 천장을 고치기 위해 위를 뜯던 날, 상량판이 모습을 드러냈고, 거기에 적힌 단서를 따라 자료를 찾다가 서정주의 글 한 문장을 만나게 된다. “나는 1932년에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그때서야 그는 이곳이 단순한 옛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건 그냥 허물어도 되는 집이 아니구나. 조금 다르게, 재미있게 놀아야 하는 집이구나.’ 그렇게 생각이 바뀌어 가던 즈음, 믿기 어려운 크고 작은 사고들이 연이어 그를 찾아왔다.
몸과 마음이 함께 다치던 시간을 지나며 그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보안여관이 날 바로 들이지 않고,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인지, 이 정도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밤에는 차마 들어갈 수 없어 낮에만 건물 안을 걸어 다니던 시절, 그는 구관 문턱을 넘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을 건넸다. “여기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나는 잠시 이곳을 맡아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몇 해를 지나며, 그는 이 건물과 조금씩 편안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보안여관의 진짜 주인은 저 낡은 건물이고, 새 건물은 그저 덧붙여진 부속일 뿐이에요.” 그는 지금도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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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 있지만, 태도는 변방에
보안여관은 4대문 안, 경복궁 바로 옆, 가장 ‘중심’이라고 불릴 만한 위치에 있다. 전시장, 카페, 책방, 객실까지 갖춘 복합 공간. 겉으로만 보면 완벽한 센터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보안여관의 태도를 “변방”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지리적으로는 중앙일지 몰라도, 태도는 항상 변방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이라는 압축 성장 도시 안에서, 다른 속도를 가진 변방을 하나 남겨두는 거죠.”
그는 새 건물(신관)을 일부러 간결하고 모던하게 지었고, 1936년에 지어진 목조 건물은 있는 그대로, 어쩌면 조금 방치된 것처럼 남겨 두었다. 두 건물 사이의 간극이 더 잘 보이도록, 새롭고 반듯한 것과 낡고 비틀린 것이 동시에 존재하도록. 겉으로 보기에는 손을 덜 댄 구관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많은 수리비와 손길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삐걱거리는 계단, 새어 들어오는 바람, 비가 새던 지붕, 눈에 띄지는 않지만 여러 번 덧댄 벽. 그는 그 모든 수선의 결과를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일”이야말로 이 건물을 향한 책임이라고 말한다.
“굳이 이렇게 안 해도 되는 도시잖아요. 깨끗하게 고쳐서 고급 숙소로 만들 수도 있고, 그게 더 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죠. 그런데 굳이, 굳이 안 하는 거예요. 그게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풍화된 결을 그대로 둔 채, 여관이라는 이름을 계속 지키고 있는 것. 그가 보안여관을 통해 이 도시에 남기고 싶은 태도는 어쩌면 그것 하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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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이라는 언어, 골목과 사람과 온기
보안여관이 서촌에 들어온 해는 2007년 가을이다. 그 무렵,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서촌의 오래된 얼굴들이 짧은 시간 안에 한꺼번에 자리를 잡았다. 두오모, 갤러리 팩토리, mk2, 황두진 건축사무소, 출판사 워크룸, 디미 같은 공간들이 서로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시기에 골목 곳곳에 불을 켜기 시작했다. “그땐 진짜 밥 먹을 데도 없었어요. 거의 늘 두오모에서 밥 먹고, 커피는 mk2에서 마시고. 선택지가 없으니까 맨날 보던 얼굴들을 계속 보게 되는 거죠. 약간 파리의 살롱 같은 분위기였어요.”
그는 서촌을 오래 걸었다. 조선시대 문인들과 화가들, 일제강점기 작가들, 지금 살고 있는 주민들과 상인들의 시간이 같은 골목에서 겹쳐지는 지점을 생각하며, 이 동네가 품은 언어를 천천히 읽어 왔다. “서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런 걸 좋아해요. 사람 있고, 골목 있고, 돌담 있고, 아이들 뛰어다니고… 지금은 그런 정서를 좋아해서 온 사람들이랑, ‘서촌’이라는 이름의 상업적 가능성만 보고 온 사람들이 같이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예전처럼 ‘서촌은 이런 동네다’라고 단정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요즘 ‘서촌 전체’를 대표해 말하는 일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있다고 했다. “이 동네의 주인도 내가 아니고, ‘서촌’이라는 말 자체도 너무 커졌어요. 지금은 그냥, 이 안에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조용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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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만 명이 드나든 문턱, 그리고 ‘보안 손님’
보안여관은 오랫동안 간판이 없는 공간이었다. 현대미술관이라는 말도 붙이지 않았고, 전시 안내를 크게 내걸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초창기 보안여관에는 목적 없이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모차를 끌고 들어오는 주민, 그냥 지나가다 호기심에 발을 들이는 사람, 전시를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누구나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현대미술관이라고 써 있으면 사람들은 이미 한 번 데인 기억이 있어서 잘 안 들어오잖아요. 근데 간판이 없으니까 그냥 다 들어오는 거죠. 저는 그게 정말 좋았어요.”
17년 동안 보안여관을 다녀간 사람은 약 7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중에서 우리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를 진짜 이해하고 돌아간 사람은 과연 몇 명일까.’ “한 천 명쯤 될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보안 손님’이라는 이름을 만들었어요. 보안여관이 지키고 있는 시간과 장소의 태도, 저 낡은 건물을 그대로 두는 이유를 기꺼이 생각해 주는 사람들. 그런 손님들과 조금 더 깊이 만나 보고 싶었어요.” 그는 여전히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플랫폼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더 안쪽으로 들어와 줄 사람들을 부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거창한 다음 패는 없어요. 이제는 큰 걸 만드는 시대가 아니라,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작은 단위들을 잘 만드는 시대인 것 같아요. 두세 명이 함께 꾸릴 수 있는 공간들, 그렇게 흩어져 있으면서도 느슨하게 연결되는 방식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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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꽃, 그리고 같은 이야기를 전하는 여러 개의 매체
그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차(茶)다. ‘다 함께 차차차’라는 프로그램, 공간 '몽재', 지역과 사람을 잇는 여러 차 프로젝트. 그에게 차는 하나의 취향을 넘어선, 시간을 다루는 도구이자 매체다. “찻잎을 딴다는 건 그 순간의 시간과 장소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고, 덖는 순간 그 시간의 산화를 멈추는 일이에요. 몇 년 뒤 물을 부으면 그때의 시간이 다시 살아나는 거죠. 그래서 차는 시간과 장소를 아카이빙하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미술, 차, 그리고 최근의 궁중채화까지, 그의 삶에서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여러 활동들은 결국 “같은 이야기를 다른 매체로 전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보안여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갑자기 궁중 꽃을 한다’는 조합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일부러 피해 다니기도 했지만, 꽃을 설치하던 어느 날 그는 확신을 얻는다. “현대미술은 설명이 많이 필요한데, 꽃은 그냥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멈춰 세우고 마음을 열게 하잖아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그는 꽃도, 차도, 예술도 모두 “세상에 생각을 전하는 매체”라고 말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그 근본에는 자연을 존중하고 사람과 장소를 잇고 싶어 하는 같은 마음이 흐르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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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아닌, 작은 단위에서 잘 지내는 삶
인터뷰의 끝에서 우리는 그에게 물었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조화로운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는 잠시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는 ‘문화예술로 세상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보안여관을 하면서 확실히 알게 됐죠.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그래서 지금은 우리랑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하고라도 작은 단위에서 잘 지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작은 공간, 작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잘 지내는 것만 해도 이미 엄청난 일이라고 봐요.”
그가 말하는 조화로운 삶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얼굴이 떠오르는 몇 사람과의 관계, 우리가 서 있는 장소와의 균형, 그 안에서 이어지는 작고 구체적인 실천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점점 더 크지 않은 단위의 공간들, 두세 명이 스스로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는 규모,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속도에 마음이 간다고 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서촌에서 “하루를 입는 마음”을 만들며 살아가고 싶은 라마홈의 삶과도 많이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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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홈과 보안여관 사이
우리는 그에게 두 가지 질문을 건넸다. 그 중 첫 번째는 라마홈과의 인연의 시작을 묻는 질문이었다. “골목을 사이에 둔 이웃이라고 다 가까워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라마홈 대표님의 두 아들이 골목을 뛰어놀고, 그 모습을 우리 보안1942 스태프들이 다 좋아했어요. 프로그램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 것도 그렇고요. 그러다 제가 점프슈트를 작업복으로 만들고 싶어서 처음 옷을 부탁하게 됐어요. 부산의 다른 공간 유니폼도 맡겼고, 제게 중요한 날에 입을 옷도 라마홈에 부탁하게 됐죠. 옷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이렇게 정겨운 이웃으로 남기 어려웠을 거예요.” 작은 동네에서 서로의 일을 믿고 맡기게 되는 관계, 그것이 그가 느끼는 라마홈과의 인연이다.
마지막은 라마홈은 스스로를 “하루를 입는 마음을 만드는 브랜드”라고 소개한다. 라마홈을 떠올리면 어떤 감정이나 문장이 남는지 묻자 그는 짧지만 단단한 답을 건넸다. “하루를 입는 마음으로 서촌의 한켠을 지키는 브랜드가 있다는 게 언제나 흐뭇해요.” 옷을 만든다는 일이 결국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는 마음 한 겹을 짓는 일이라고 믿는 우리에게, 이 한 문장은 오래 남는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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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 태도라고 믿는다
그의 어머니는 어느 날 그에게 ‘만취(滿醉)’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고 한다. 술에 취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더 차분하게 가득 차고,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이름이다. 청소년 시절의 그는 그저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던 아이에 가까웠다고 말하지만, 책을 읽고, 차를 따르고, 꽃을 세우고, 공간을 운영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이어 온 시간 속에서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고 웃는다.
보안여관, 차, 꽃, 서촌. 그가 붙들고 있는 것들은 전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다. 급하게 성장하거나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에는 너무 느리고, 설명 없이 완전히 이해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촌의 골목을 오래 걸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안다. 어떤 공간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의 태도 때문에 더 오래 기억 속에 남는다는 것을. 보안여관을 나오는 길, 우리는 그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여기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나는 잠시 이 시간을 맡아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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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이라는 동네에서 옷을 만들며 마음을 건네고 싶은 우리는, 이 말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한 계절, 한 사람, 한 집의 시간을 천천히 꺼내어 담는 일. 그저 우리의 속도로, 우리의 옷으로, 이 골목의 작은 불빛 중 하나로 조용히 반짝이고 싶은 마음.
언젠가 당신이 보안여관의 계단을 오르다가, 혹은 서촌의 골목을 걷다가, 이 세 번째 편지를 한 번 떠올려 준다면, 라마홈에게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금수저가 아니라, 그저 시간의 집에 조용히 얹혀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마음들이 지켜지고 있는 서촌에서, 오늘도 당신의 하루에 닿을 마음을 천천히 지어 나가려 합니다.
우리의 시간도 잠시 맡아 지나는 것이기에, 다음 계절의 편지를 또 정성스레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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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ahome letter no.3
interview 김민하
photo 천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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