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의 낮은 지붕 사이로 햇빛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골목을 걷다 보면, 조용히 하루의 온기를 품고 있는 한 식당이 있습니다. 라마홈이 문을 열던 초기, 가장 먼저 용기를 내어 그 안으로 들어와 준 사람이 바로 이 식당의 주인, 박운미 님이었습니다. 작은 인사와 따뜻한 마음이 오래 남아, 두 번째 편지는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서촌식당을 지켜온 운미 님과 아들 손재영 님의 하루에는 급하게 흘러가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처음 문을 열던 때부터 지금까지 직접 농사지은 고춧가루와 직접 담근 김치로 한 끼를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계절과 날씨를 살펴 ‘오늘의 메뉴’를 고르는 반복, 그리고 서로의 손끝을 믿으며 한 공간을 이어온 가족의 리듬. 천천히 쌓여 온 그 시간들은 낡아도 버려지지 않는 리넨처럼 잔잔하면서도 깊고, 우리가 사랑하는 서촌의 속도와도 닮아 있습니다.
이번 두 번째 편지에는 운미 님과 재영 님의 손끝에서 이어져 온 식당의 결, 서촌을 오래 바라본 사람의 말투, 이웃에서 친구가 되고 결국 마음을 나누게 된 관계의 온기를 담았습니다. 라마홈이 앞으로도 지켜가고 싶은 것은 이런 ‘오래 이어진 마음’의 자리일 것입니다.
이 문장이 당신의 하루 어딘가에 부드럽게 내려앉기를 바라며, 두 번째 편지를 조심스레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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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식탁, 첫 손님의 마음 서촌식당 | 박운미 · 손재영 님
서촌의 낮은 지붕 사이로 햇빛이 느리게 스며드는 골목. 라마홈 문을 나서 단 한 걸음만 옮기면, 점심 무렵마다 따뜻한 김이 퍼지고 반찬 냄새가 은은하게 흩어지는 식당이 있다. ‘서촌식당.’
처음 라마홈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을 때, 아직 가오픈이라 문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던 시기였다. 그때 가장 먼저 다가와 “예쁘다, 잘될 것 같다”며 용기를 건넨 사람이 박운미 님이었다. 준비가 덜 된 공간에 스며든 그 첫 마음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시작이 되었다. 라마홈 앞을 오가던 한 청년은 어느새 식당의 또 한 사람의 얼굴이 되었고, 두 공간은 그렇게 이웃이자 단골이자 서로의 하루를 지켜보는 동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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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이어온 삶 세탁소에서 식당까지, 운미 님의 이야기
운미 님이 서촌에 처음 왔을 때 하루는 매우 단순했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 안 살림을 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끝이 근질거렸다고 했다. “만들고, 고치고, 요리하고... 손으로 하는 건 예전부터 저랑 잘 맞았어요.” 그녀는 말하면서 손끝을 한 번 내려 쓰다듬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작한 일이 세탁소였다. 크린토피아를 운영하며 가게 안쪽에 작은 수선실을 만들어 옷을 고치고 손을 더했다. 가게마다 세탁소가 늘어나던 어느 시점부터는 마음이 다른 곳을 향했다. 오래전부터 마음 한쪽에 자리했던 ‘요리’가 떠오른 것이다. “맛있게 만들면 잘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가 자신 있었던 것도 그거였고.”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지만, 그녀는 자신의 손끝을 믿었다. 그렇게 한 걸음 내디딘 선택이 지금의 서촌식당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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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모자
함께 식당을 지키는 두 사람
식당 초반의 하루하루는 쉽지 않았다. 운미 님은 대부분의 일을 혼자 감당해야 했고, 도와주는 인력은 늘 불안정했다. 그러던 무렵, 외국에 있던 아들 재영 님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운미 님은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잠깐이라도 도와줄 수 있겠니?” 재영 님은 그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오늘도 일하는 친구가 안 나왔구나 싶었어요. 도와드려야겠다 하고 바로 왔죠.” 그 한 번의 발걸음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
처음엔 잠깐 돕는 일이었지만, 어느새 식당의 또 한 축을 단단히 맡게 되었다. 요식업 아르바이트 경험 덕에 손님의 동선을 보고 대응하는 일이 익숙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운영의 결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주방에도 들어가 함께 한 끼를 만들었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스물네 살이지만 오래전부터 친구처럼 지냈다. “엄마랑 친구처럼 지내서 더 편해요.” 재영 님의 말을 들은 운미 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로 대하면 서로 스트레스만 받아요.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해야 오래가더라고요.” 식당의 편안함은 어쩌면 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온기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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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에 담긴 진심
세 사람의 손맛이 이어지는 식당
서촌식당의 맛은 외할머니에게서 운미 님, 그리고 재영 님으로 이어지는 ‘손맛의 계보’ 위에 놓여 있다. 운미 님의 어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늘 직접 만든 음식을 상에 올리던 사람이었다. “할머니 맛이 엄마한테 오고, 그게 이제 저한테도 오고 있는 거죠.” 그는 말끝을 살짝 고치며 물컵을 한 번 돌려 놓았다.
운미 님은 재료를 고르고 다듬는 데 집중한다면, 재영 님은 그 음식을 가장 단정하고 깨끗하게 담아내는 역할을 맡는다. 서로의 손끝이 닿아 완성되는 상차림은 그래서 더 자연스럽고 묵직하다. 특히 ‘오늘의 메뉴’는 서촌식당의 상징이다. 운미 님은 그날의 공기와 날씨를 먼저 본다. “덥거나 지칠 땐 비빔밥 같은 걸 하고, 비 오거나 으슬으슬하면 뜨끈한 걸 해요.” 네 가지 메뉴 안에서 계절과 기분, 손님의 하루까지 은근히 녹아든다.
음식이 나가기 전, 두 사람은 늘 먼저 맛을 본다. 짜다면 다음 날은 줄이고, 심심하면 다음 날은 더한다. 작은 조율을 매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재영 님의 조리법이 운미 님의 기준을 넘어설 때도 있다. “결국 한 끼잖아요. 그 한 끼에 만족을 드리면 그걸로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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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바느질 두 사람의 취향이 만든 서촌식당의 풍경
서촌식당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식물의 초록이다. 선반과 벽면에 놓인 식물들은 대부분 운미 님의 손에서 자라난 것들이다. “엄마는 수집도 잘하고, 다시 키워서 나눠주는 것도 좋아했어요.” 재영 님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듯 말했다.
그렇게 쌓인 관심은 결국 지금의 식물 사업으로 이어졌다. 괴근식물을 좋아해 직접 수입하고 전시하고 판매하던 일이 브랜드 ‘콘’(@conkr.official)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식당 안의 식물만큼은 온전히 운미 님의 선택이다. “여기는 엄마의 정원이에요.” 그는 자연스레 덧붙였다.
운미 님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여전히 바느질이다. 천을 잇고 패턴을 만들고 조용히 바느질을 하고 있으면 하루가 한 시간처럼 흘러간다. “밤새서라도 하고 싶을 만큼 즐거워요.” 그녀의 다음 장면 역시 손끝에서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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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다움에 대하여
서촌에 자리 잡은 지 17~18년.
운미 님이 이곳을 처음 알게 된 건 남편의 직장이 종로였기 때문이다.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았고, 잠시 외곽으로 옮겨 살던 시절에도 결국 다시 서촌으로 돌아왔다. “경복궁 앞까지만 와도 마음이 편안해져요. ‘아, 내가 살던 곳이구나’ 하고.”
재영 님은 서촌을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튀지 않는 동네”라고 표현했다. “경복궁 돌담길도 그래요. 눈에 확 띄진 않는데 오래 남는 느낌.” 가을이면 청와대 길에 은행잎이 쌓인다. 운미 님은 그 길을 걸을 때마다 묘하게 마음이 아려온다고 했다. “너무 예쁘면… 괜히 슬픈 거 있죠. 곧 지나갈 것 같아서.” 계절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이 함께 묻어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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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홈과 서촌식당 한 골목 사이에서 이어진 인연
운미 님에게는 식당을 마치면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 건너 작고 하얀 공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문은 자주 닫혀 있었지만 그래서 더 궁금함이 길게 남았다.
“오픈하셨어요?” 조심스레 건넨 운미 님의 말을 듣고, “아직 가오픈 중이라 준비가 조금 덜 됐다”고 웃으며 하나대표는 대답했다. 그날 운미 님은 망설이지 않았다. “첫 손님이 돼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올라왔고, 그렇게 라마홈은 첫 결제를 맞이했다. 시작이라는 건 늘 조용한 순간에 찾아오는데, 라마홈에게는 그날이 오래 기억되는 첫 장면이었다.
그 인연은 시간이 지나며 더 단단해졌다. 라마홈이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 했을 때도 가장 큰 힘이 된 사람이 운미 님이었다. 옆 가게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다리를 놓아준 덕분에 지금의 ‘라마홈 옆 서촌식당’이 만들어졌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두 가게가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기대며 하루를 이어가는 풍경이 이렇게 자리 잡았다.
지금 운미 님의 옷장 3분의 2는 라마홈의 옷으로 채워져 있다. 재영 님은 라마홈 셔츠는 어디에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 말했다. 더 재미있는 건 서촌식당의 모든 음식에 라마홈 후추가 들어간다는 것. “향이 좋고 맛이 좋아서요. 전부 그걸로 써요.”
라마홈이 서촌에 있다는 의미를 묻자, 운미 님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즐거움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언제든 보러 갈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면서 서촌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면 좋겠어요. 라마홈은 옷과 물건으로, 우리는 밥과 한 끼로. 그렇게 함께 공존하는 가게로 오래 남았으면 좋겠어요.”
라마홈과 서촌식당은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서촌의 하루를 채우고 있다. 한 벌의 옷, 한 끼의 밥, 이웃이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인사와 발걸음. 그 모든 장면들이 서촌이라는 동네의 결을 완성한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을 두고 오래 기억하게 될 장면들도 바로 이런 순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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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식당의 하루를 함께 바라보며 라마홈은 앞으로의 편지가 나아갈 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시간을 묵묵히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고, 함께 걸어준 서촌의 이웃들. 그들 곁에서 쌓여온 마음이 라마홈을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어왔다고,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라마홈의 편지는 앞으로도 이 동네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걸어온 속도 그대로 천천히 전하려 합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오래 남는 순간들, 손끝에서 스며 나오는 다정함, 하루 속에 숨어 지나가는 작은 아름다움을 담아 차분히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번 두 번째 편지가 당신의 하루 어디쯤에 부드럽게 놓여 작은 쉼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또 다른 이웃의 하루를, 또 하나의 느린 결로 찾아오겠습니다.
오래 머무는 마음을 담아, 라마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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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ahome letter no.2
interview 김민하
photo 천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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