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의 오래된 골목, 한 줌 햇살 아래 리넨이 숨 쉬는 곳, 라마홈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모아 한 장의 편지를 엽니다. 오래 지켜본 천이 시간이 지나며 더 깊은 질감을 품듯, 한 사람의 손길이 또 다른 사람의 하루를 이어주듯, 라마홈이 걸어온 시간 속에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결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결을 온전히 전하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편지라는 형태로 피어났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옷은 단순히 몸을 감싸는 물건이 아니라 ‘하루를 입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그 마음을 함께 만들어주는 사람들, 서촌이 건네준 계절의 변화, 이 공간을 집처럼 찾아와준 단골들의 이야기. 라마홈을 이루는 모든 순간은 조금 느리고, 조금 깊고, 무엇보다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이 첫 편지에서는 라마홈이라는 집을 처음 짓게 한 마음과, 이 공간의 결을 함께 완성해준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라마홈의 편지는 앞으로도 서촌의 바람이 머무는 속도처럼, 리넨 위 햇빛의 질감처럼, 너무 크지 않은 마음들을 담아 조용히 건네드릴 예정입니다. 이 작은 시작이 당신의 하루에도 은은한 파동처럼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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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첫 올의 마음 | 라마홈, 이하나
치유의 시간에서 시작된 집
서촌 골목의 한켠,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공간. 라마홈은 ‘옷가게’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천천히, 오래, 손길이 스며 있는 자리. 마치 누군가의 일상이 머무는 조용한 집 같다. 이곳의 시작은 한 사람의 회복에서 비롯되었다. 6년 전, 이하나 대표는 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병 앞에서 일상은 흔들렸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졌다. 그 무렵, 그녀는 자꾸 서촌으로 향했다. “옷을 만들며 스트레스가 심했을 때도 항상 서촌으로 왔어요. 그냥 걸으면 숨이 조금 트였거든요. 책을 보고, 차를 마시고, 골목을 걷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서촌은 저에게 치유의 동네였어요.” 그 치유의 자리에서 그녀는 생각했다. ‘여기에 매일 올 수 있는 일을 만들어야겠다.’ 그 결심이 라마홈의 시작이었다.
오래 입은 시간으로 쌓은 바탕
라마홈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회복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밑바탕에는 오랜 시간 ‘옷’과 함께해 온 경력이 놓여 있다. 어머니의 마지막 사업이었던 의류업을 이어받아 또 다른 가족과 함께 영국 시장에 진출하며 브랜드의 한 축을 맡아 성장했다. “가족들은 영국에 있었고, 저는 한국에서 기획과 디자인, 생산을 도맡으며 9년간 수많은 공장에서 소량부터 대량까지의 모든 과정을 경험했어요.” 그 시절 어느 밤은 한국의 봉제공장에서 날을 새우고, 어느 날은 런던의 매장에서 자신이 만든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그 시간들은 단순한 ‘패션 경력’이 아니라, 옷을 통해 풀어낼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와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 세계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린넨이 가르쳐 준 느린 감각
라마홈은 처음 리넨 숍으로 문을 열었다. 유럽과 일본 출장에서 자주 접하며 일상처럼 써 온 소재, 그녀의 삶을 감싸는 ‘감촉’이었다. “리넨은 뻣뻣하고 다루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오히려 포근하다고 느꼈어요. 주방에서 손을 닦고, 베개를 갈고, 식탁 위에 천을 펼칠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보여주기 위한 ‘친환경’이 아니라, 그냥 삶의 방식이더라고요.” 라마홈에서 사용하는 리투아니아 리넨은 쓰면 쓸수록 부드러워지고, 낡을수록 더 따뜻해진다. 관리가 어렵다 믿던 사람들이 세탁할수록 멋스럽게 스며드는 변화를 경험한다. 라마홈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도 그렇다. 빨리 닳는 대신 천천히 스며들고, 화려하게 번지는 대신 오래 곁에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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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관계로 짓는 옷
라마홈의 옷은 혼자 만들지 않는다. 그 안에는 오래 이어진 관계의 결이 있다. 이하나 대표에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 김진 디자이너가 있다. 어려운 시절마다 서로를 지켜준 관계이자, 지금은 ‘낸시앤아스테리아’라는 브랜드를 함께 이끄는 파트너다. “저는 소재와 기획을 잡고, 진이는 디테일과 색감에 탁월해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함께 가요. 혼자였다면 못 갔을 자리까지 같이 가는 느낌이에요.” ‘낸시앤아스테리아’는 두 사람의 세례명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낸시(Nancy)’는 은혜, ‘아스테리아(Asteria)’는 별. 스무 살 무렵 “언젠가 우리가 함께 쓸 이름”이라며 장난처럼 지은 말이 지금의 브랜드가 되었다.
옷 한 벌이 나오기까지 몇 해가 걸리기도 한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입고 싶은 옷, 오래 남을 옷을 ‘발명하듯’ 만든다. 그리고 이 과정을 든든히 받쳐주는 한 사람, 평생 봉제 일을 해 온 장인 김기문 소장님이 있다. “하나가 영국으로 보내는 옷을 만든다고 했을 때도, 가게를 열고 다시 옷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도 제게 왔어요.” 지금은 두 딸의 브랜드와 라마홈의 옷이 하나의 작품처럼 완성되도록 손끝을 더한다. “이건 효율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구조예요. 가족이니까, 이익보다 마음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라마홈은 그렇게 한 가족의 손끝으로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지어지고 있었다.
함께 살아가는 브랜드, ramahome
라마홈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들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다. 그들은 이웃이자 친구이며, 라마홈의 일부다. “처음엔 그저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이었지만, 점점 서로 애틋해질 만큼 가까운 이웃이 되었어요. 저를 살리러 와주신 분들이기도 하고요.” 라마홈이 고르는 기준은 단순하다. ‘오래 사용할 수 있는가.’ ‘내가 써봤을 때 좋았던 것, 내가 쓰고 싶은 것.’ 그 기준을 통과한 작가와 브랜드의 물건만 라마홈 안에 놓인다. “결국엔 다 비슷한 사람들이더라고요. 이익보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 그런 마음이 담긴 물건이라면, 오래가요.” 라마홈은 서촌에서 6년을 버텼다. 코로나도, 월세 걱정의 밤도 지나며 ‘물건을 파는 곳’에서 ‘관계를 짓는 곳’으로 변해왔다. 서촌의 느린 속도처럼, 라마홈도 그렇게 하루하루 쌓여왔다.
오래 남는 것들의 가치
“저는 물건에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하나 대표의 말은 라마홈의 철학을 요약한다. 물건은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다. “그냥 예쁘니까 사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 우리 집에서 함께 살자’는 마음으로 사는 거예요. 최소한 10년은 함께하겠다는 약속처럼요.” 라마홈은 옷을 파는 가게가 아니다. 사람들이 옷을 통해 위로받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브랜드다. “제가 받았던 도움을 언젠가 돌려줄 수 있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라마홈의 옷은 유행을 좇지 않는다. 대신 오래 남는다. 관계 또한 그렇다. 낡아도 버려지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애틋해지는 것. 그게 라마홈이 짓는 방식이다.
“이 일이 아니었다면, 난 이 사람들을 못 만났을 거예요.”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그 생각만으로도, 라마홈은 이미 의미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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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손끝으로 지켜온 56년 | 김기문 소장님
달이 뜨던 날, 서울역에 내리다 1969년 6월.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서울역 대합실에는 “호외!”를 외치는 소리가 가득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던 날, 전남 해남에서 올라온 한 청년도 같은 역에 서 있었다. “그날 서울에 떨어졌어요. 그러니까 기억을 못 할 수가 없죠.” 그가 지금 라마홈의 옷을 만드는 사람, 김기문 소장님이다. 해남에서 자라 전쟁 직후의 혼란도, 시골에 남아 있던 북쪽 사투리도, 배고픈 여름도 다 기억하는 세대. 그가 서울로 올라온 이유는 단순했다. “서울에 가야 배울 수 있으니까.” 그 시절엔 그것으로 충분했다.
명동에서 배운 ‘처음부터 끝까지’ 서울에 올라와 그가 향한 곳은 명동이었다. 당시 명동은 화려한 상권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옷을 만드는 동네’였다. 빌딩마다 의상실이 있었고, 이름 있는 디자이너들이 있었고, 저녁 막차가 끊길 때까지 재봉틀이 멈추지 않던 시절이었다. “송옥 의상실이라고, 그때 제일 큰 데가 있었어요. 거기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배웠죠.” 디자인 → 패턴 → 재단 → 봉제 → 완성. 지금은 거의 분업으로 나뉘어 있는 이 과정을 그는 토탈로 했다고 말한다. “애들한테 말해요. 우리는 전천후였다고. 아동복부터 숙녀복까지 다 했어요. 디자인도 하고, 패턴도 하고, 재단도 하고, 봉제까지 하는. 그런 사람들은 지금 별로 없어요.”
그때 그는 일본식으로 일을 배운 1세대 장인들에게서 기술을 전수 받았다. “처음에 들어가면 일본 숫자부터 배웠어요. 이찌, 니, 산, 시. 자르는 단위도 일본식으로. 말투도 반 일본어였어요. 근데 그 사람들이 아주 엄하게, 확실하게 가르쳤어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그는 자기 이름을 건 의상실도 냈다. ‘김훈 의상실’. “내 이름이 김기문이잖아요. 친구들이 ‘김훈이 멋있다’ 그래서 그렇게 쓴 거예요. 그때는 두 글자로 간판을 많이 했어요. 좀 있어 보이게.” 하하.
장인은 왜 ‘마무리’를 말할까 반세기 넘게 옷을 만들면서도 그가 지키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대충하면 예쁘게 안 나와요. 소홀히 하지 말자. 있는 정성 그대로 하자. 끝이 제일 중요하다.” 그는 옷이란 결국 입는 사람에게 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패턴을 만들 때도 가장 먼저 보는 게 ‘인체’다. “옷은 편안해야 입어요. 불편하면 안 입죠. 패턴은 사람이 입었을 때 옷이 돌아가면 안 돼요. 세탁해도 뒤틀리지 않게 해야 되고. 그게 마무리예요.” 그래서 라마홈 옷이 세탁소를 여러 번 들락거려도 흐트러지지 않고, 누빔이 풀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겉으로는 편안하고 느슨하지만, 실은 아주 정확하게 계산돼 있는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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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아니면 못 만드는 옷 라마홈이 서촌에 문을 연 뒤로 그는 자연스럽게 이 작업에 합류했다. 이하나 대표, 김진 디자이너, 김선 디자이너 세 여성이 각자 브랜드를 운영하고, 그는 그 모든 옷의 패턴과 봉제를 담당한다. “여기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잖아요. 이 구조는 기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못 해요. 아니, 가족이 아니면 못 해요. 이익으로만 하면 안 되는 구조예요.” 그가 특히 기억에 남는 옷으로 꼽은 건, 라마홈의 목화솜 누빔 아우터이다. “그건 재단을 세 번, 네 번을 해요. 겉감이 두 장 들어가고, 안에 들어가는 거 하나, 충전재까지. 1mm도 안 빠지게 누벼야 돼요. 그래야 세탁해도 안 틀어져요. 그거는… 우리 아니면 못 해요.” 이하나 대표도 옆에서 맞장구쳤다. “그건 공장에 못 맡겨요. 아버지가 계셔서 가능한 거예요.” 그는 그 말을 듣고도 쑥스러운 듯 웃기만 했다. “예술품인데 너무 싸게 팔더라고. 그래도 뭐…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미안함과 자부심이 함께 있는 자리 딸들과 함께 일하는 마음을 묻자, 그는 가장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하니까… 아빠로서는 참 미안하지. 그게 첫 번째예요.” 그럼에도 그는 분명 자부심이 있었다. 딸들이 그냥 보고 자라서’가 아니라 정말 자기 일로 이어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더 좋은 환경을 물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어가니까 기특하죠.” 라마홈의 매출이 잘 나온 날이면 그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아침에 수선할 옷이 잔뜩 쌓여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와서 수선이 많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많이 팔렸다는 거잖아요. 우리는 그게 목적이니까.” 현실적이면서도 단정한 한마디. 오래 현장에서 일해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80까지는 하고 싶어요” 라마홈이 앞으로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제발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콩나물처럼 하나씩 올라가잖아요. 한번에 ‘팍’ 하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올라가니까 그게 진짜예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80까지는 하고 싶어요. 건강하게. 일하는 사람은 일해야지.” 그의 말은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있는 한, 라마홈은 ‘손으로 만든다’는 말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라마홈이 오래 가는 이유는 예쁜 디자인 때문만이 아니다. 아직 이 집에는 끝까지 손으로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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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시간을 입히는 짜임 | NANCY + ASTERIA, 김진
옷이 먼저 와 있던 집김진에게 옷은 배워야 하는 게 아니었다. 부모님은 제조업을 하셨고, 방과 후에는 재봉틀 소리를 들으며 놀았다. 할머니는 손바느질로 인형 옷을 만들어주셨고, 집 안에는 늘 패션 잡지가 있었다. 그래서 ‘패션 디자이너’라는 말은 특별한 꿈이 아니라,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옷은 일상이었고, 천의 결은 그때부터 손끝에 남았다.
돌아 나와서야 보게 된 길 패션을 전공한 뒤 그는 여러 길을 걸었다. 영국 수출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임선옥 디자이너의 브랜드 ‘파츠파츠’ 에서 MD 그리고 브랜드 수입 유통회사에서 리테일 매니져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옷을 만드는 일만으로는 브랜드가 완성되지 않아요. 옷을 입는 사람의 이야기가 닿을 때, 그때 진짜 완성돼요.” 그는 디자인뿐 아니라 브랜드의 구조, 유통의 흐름, 소비자의 감정까지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 경험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제 그는 ‘예쁜가’보다 ‘오래 입을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건, 옷과 사람의 거리를 함께 볼 줄 아는 사람의 시선이었다.
오래된 약속에서 태어난 이름 ‘낸시앤아스테리아(NANCY + ASTERIA)’ 그 이름은 김진과 이하나 대표가 스무 살 무렵, 언젠가 함께 쓰자며 장난처럼 지어둔 두 사람의 세례명에서 비롯되었다. 낸시(Nancy)는 은혜를 뜻하고, 아스테리아(Asteria)는 별을 의미한다. 은혜와 별, 서로 다른 상징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오래된 신뢰와 우정의 상징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 약속이 현실이 되었을 때, 김진은 잠시 망설였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 이름을 오래 지켜갈 수 있을까.’ 그때 라마홈이 있었다. 손으로 만든 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손님들, 믿음처럼 이어진 관계, 그리고 가족 같은 팀이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다. “이제는 이 이름으로, 시간을 입히고 싶어요.” 그렇게 은혜의 이름과 별의 이름이 한 옷 안에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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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에서 완성되는 옷
김진의 옷에는 보이지 않는 배려가 곳곳에 녹아 있다. 움직임을 세심하게 고려해 설계된 구조, 세탁 후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단정한 박음질, 유행을 타지 않는 실루엣. 그녀는 말한다. “디자인은 결국 배려에서 나와요. 옷을 입는 사람의 하루와 움직임, 그리고 기분까지 상상하며, 사용자의 경험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디테일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그녀의 옷은 화려하지 않지만, 입을수록 편안하다. 낡아도 버려지지 않고, 오래 있을수록 더 정이 가는 옷. 그건 평생 봉제 일을 해온 아버지를 보며 배운 태도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오래된 건 낡은 게 아니라, 시간이 깃든 것이다.
함께 지어가는 시간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건 늘 쉽지 않다. 때로는 말이 모질게 오가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만든 패턴을 정리해서 남기고 싶어요. 그건 모두의 역사니까요.”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 이하나 대표가 있다. 서로의 결을 아는 사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동료. 김진은 그런 관계 속에서 옷을 짓는다. 그녀의 옷은 결국 관계의 옷, 함께 만들어진 시간의 옷이다.오래 남는 옷, 오래 남는 마음라마홈 안에서 낸시앤아스테리아는 서촌의 느린 결을 품고 있으면서도, 조금 더 멀리 나아가려 한다. “서촌에서 시작했지만, 서촌에만 머무는 옷은 아니에요. 대신 서촌의 시간, 손으로 만든 마음은 끝까지 가져가고 싶어요.” 김진에게 옷을 만든다는 건 결국 한 편의 이야기다.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 입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손끝의 이야기. 그 모든 것이 모여 ‘시간을 입히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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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월요일처럼 다시 시작하는 가방 | 스튜디오 WOM, 김선
다른 전공에서 다시 손으로 김선은 원래 옷을 배우거나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었고 한동안은 아주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래도 마음은 늘 손으로 가 있었다. 직접 천가방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주말에는 아버지 공장에서 일손을 보탰다. 옷감이 수십 장 겹치는 순간의 무게, 공장에서 돌아가던 미싱 소리와 재단 도구들. 전공은 아니었지만, 생활은 이미 ‘만드는 것’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래서 회사가 흔들리던 어느 해, 그녀는 조용히 마음을 정했다. “지금 안 하면 영영 못 하겠다.” 그게 스튜디오 WOM(더블유오엠)의 시작이었다.
Warm On Monday, 매주 찾아오는 시작 그녀가 붙인 이름은 WOM, Warm On Monday. 새로운 시작에 따뜻한 응원같은 마음을 담아 지어진 이름이다. 한 해에도 수십 번 오는 월요일처럼, 사람들 곁에 자연스럽게 다시 찾아오는 가방이면 좋겠다고 했다. 너무 거창하지 않고, 너무 멀지 않고, 조금 따뜻하고, 다시 들고 싶어지는 그런 존재. 일을 가는 날에도,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날에도, 그냥 서촌 골목 산책을 나서는 날에도 들 수 있는 가방. “늘 곁에 두어도 지루하지 않은 것, 오랜만에 꺼내도 어색하지 않은 것.” WOM이 만들고 싶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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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보다 천을 택한 이유 김선은 처음부터 패브릭 가방을 만들었다. 어깨가 약해서 무거운 가죽 가방을 오래 들 수 없었고, 가장 익숙했던 재료가 천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가방은 ‘멋’보다 ‘도구’였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 두는 일상의 도구에 아름다움을 더하여 쓰는 사람이 애정을 가지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가방을 만든다.
따로 걷고, 같이 보이는 자리 WOM은 라마홈과 거의 동시에 시작했다. 이하나 대표가 말하듯 “선이가 작업실을 먼저 냈다”는 건 이 집의 공식처럼 남아 있다. 서촌에 라마홈이 문을 열고, 그 안에 WOM의 가방이 걸리면서 두 브랜드는 ‘같은 공간을 쓰지만 서로의 일을 지켜주는 사이’가 됐다. 김선은 말한다. “저는 만드는 건 자신 있었는데, 보여주는 건 자신이 없었어요. 라마홈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유지가 됐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 관계는 묘하다. 각자 브랜드가 있고, 각자 고객이 있고, 각자 결이 있지만 한 공간 안에 놓이면 한 가족처럼 보인다. 라마홈의 옷이 ‘오래 입을 옷’이라면, WOM의 가방은 ‘그 옷과 함께 다닐 가방’이 되는 식이다. 따로 일하지만, 결국 함께 자라는 구조. 라마홈을 하는 세 사람이 모두 같은 말로 “오래 쓰는 것”을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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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만든 것의 다정함 김선에게 손으로 만든다는 건 ‘다정하게 상상한다’는 말과 비슷하다. 가방을 만들 때 그녀는 여러가지 상상을 한다. 무엇을 넣을까, 어떻게 잡을까, 어떤 곳에 이를까. 공장에서 찍힌 것과 손으로 만든 것의 차이는 결국 이 ‘상상’의 유무라고 생각한다. “사용하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만드는 제품은 흔치 않아요.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찾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녀는 속도 경쟁을 하지 않는다. 하나를 만들어도 품이 많이 드는 방식, 시간이 걸리는 패턴을 고수한다. 그게 비즈니스적으로는 늘 과제지만, “빨리 팔리는 가방”보다 “버려지지 않는 가방”이 먼저라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월요일이 계속 오듯이
WOM 가방을 만들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가 조금이라도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 부분인데 그것이 억지스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삶이 만들어가고 싶은 일상의 형태이고, WOM을 통해 전하고 싶은 가치라고 한다. 요즘 WOM은 밖에서도 불린다. 윤현상재의 ‘일상의 파랑’ 기획에 참여해 공예와 자신의 가방을 겹쳐보았고, 챕터원 플래그십 매장에도 입점했다. SNS를 열심히 하는 편도 아니고, 화려한 홍보를 한 것도 아닌데 기획자들이 먼저 찾아온 건 결국 “곁에 두는 가방”이라는 인상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일상을 함께 하는 가방을 만들 것 이다.
한 번 좋아지면, 오래 들 수 있는 것. 잊고 있다가도 다시 생각나는 것. 월요일은 누구에게나 다시 오니까 WOM도 그런 브랜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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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조심스러운 걸음이지만, 라마홈이 지난 시간 동안 품어온 마음을 가장 솔직한 형태로 건네드리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편지는 라마홈이 매일 마주하는 작은 변화들,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결,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준 조용한 아름다움을 한 장씩 정성스럽게 기록해 나가려 합니다.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공간에서 천천히 배워왔습니다. 이 작은 시작이 당신의 하루 어디쯤에 부드럽게 놓이기를 바라며, 다음 편에서도 라마홈의 가장 조용하고 따뜻한 얼굴로 찾아뵙겠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담아, 라마홈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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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ahom letter no.1 interview 김민하 photo 천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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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mahome@gmail.com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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